말 한 뼘의 여백, 침묵으로 쓰는 후반전

2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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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어려운 게 우리말이다. 말투 하나만 어긋나도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되곤 한다. 누군가에게 힘을 주려 건넨 명언조차 상황과 경우에 맞지 않으면 상처를 주는 망언으로 돌변한다. 퇴근 후 지친 동료에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고 하거나, 큰 실수를 하고 낙담한 후배에게 “이 또한 지나가리라” 같은 말을 툭 던질 때, 말하는 쪽은 격려라 여기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고통을 참고 견디라는 주문처럼 들릴 수도 있다. 상대의 마음이 숨 쉴 한 뼘의 여백 없이 내 정답만 들이미는 순간, 빛나 보이던 말은 오히려 마음을 닫게 만드는 무거운 짐이 되고 만다.

[인터넷 사진]

    휴대폰 SNS 앱(위챗, 카카오톡) 대화방으로 소통하는 시대가 되면서 우리는 가족이나 동창, 동호회 같은 단체 대화방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소동을 종종 보게 된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조언이나 뼈 있는 한마디가 화근이 되어, 갑자기 대화방을 나가버리거나 서로를 차단하며 관계가 끊어지는 일도 생긴다. 말하는 사람은 좋은 뜻이었다고 여기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때로 조롱이나 비꼬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상대를 위한다는 마음이 앞서 자존심의 마지노선을 건드리는 순간, 그 말은 의도와 상관없이 도를 넘는 실수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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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이켜보면 나 또한 그 파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았다. 스물네 살의 이른 나이에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오직 앞만 보고 달린 덕에, 서른 중반에는 총경리라는 직함을 달았고, 이후에는 한국에 재취업한 뒤에도 본부장과 지점장 등 늘 지시하고 이끄는 자리에 서 있었다. 어쩌면 남들보다 이른 시기에 높은 직함을 달게 된 환경이 나를 어느새 ‘말하는 사람’으로 굳어지게 했는지도 모른다. 내 경험이 곧 정답이라 믿었고, 나의 조언이 상대에게 큰 힘이 될 거라 확신하며 살아왔다. 누구에게 의도적으로 갑질을 하거나 호통을 친 적은 없었기에 스스로를 꽤 괜찮은 선배라 여겼다. 그러나 리더라는 위치가 주는 말의 무게와 권위는 그때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이제 와서야 내 설익은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거부하기 어려운 압박이었을지도 모르고,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 숨 막히는 훈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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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서툰 말의 여운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서 먼저 나타났다. 어느 날 딸은 나를 위챗에서 차단해버렸고, 딸의 소식을 이제는 아내의 핸드폰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한다. 친구들과 어울려 유행하는 챌린지 춤을 추며 활짝 웃는 딸의 영상을 보며 안도하면서도, 정작 그 웃음의 장면에 내가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진다. 아버지의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건넨 말들이 딸에게는 다가가기 힘든 날카로운 가시 장벽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뒤늦게 마음을 다잡아 본다.
    먼저 안부를 물어도 회신이 없거나 이미 닫혀버린 옛 동료들의 대화창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예전 같으면 서운한 마음에 이유를 따져 묻고 싶었겠지만, 이제는 그저 담담하게 그들의 침묵을 지나쳐 보낸다. 내 말의 주파수가 그들의 삶에 가닿지 못했음을 인정하며, 이미 담을 쌓아버린 옛 동료들의 마음을 이해하며 지나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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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의 나는 부쩍 감상적인 사람이 되었다. 가끔은 거실에 홀로 앉아 드라마의 사소한 장면 하나에도 울컥하며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남자에게도 갱년기가 찾아온다는 말이 사실인지, 예전엔 없던 눈물이 많아졌고 감정도 예민해졌다. 아내 역시 오랫동안 갱년기 증상으로 힘겨워하고 있는데, 나까지 그 터널을 함께 지나고 있는 듯해 마음이 서글퍼질 때가 있다.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라 묵묵히 내 할 일만 하며 모니터 속으로 숨어버리곤 하지만,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여도 속마음은 늘 미안함과 애틋함으로 가득 차 있다. 말보다 필요한 것은 때로 곁에 머물러주는 태도라는 것을 조금씩 배운다.
    현재 나는 새로운 직장의 물류센터에서 평범한 직원으로 중국 수출 업무를 보고 있다. 화려했던 직함은 내려놓았지만, 현장의 실무를 하나씩 익히며 흘리는 땀방울이 오히려 달게 느껴진다. 십여 년간 놓았던 프로그래밍 실력을 업무 현장에 접목해 효율을 높이는 과정은 나에게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즐거운 도전이다. 높은 자리에서 호령하던 시절보다, 물류 현장에서 주어진 업무들을 차근차근 해 나가며 봉착한 어려운 일들을 하나하나 풀어 나가는 지금이 훨씬 더 실존적인 평온함을 준다. 낮에는 업무에 집중하고 퇴근 후에는 글쓰기와 프로그래밍 최신 기술을 독학하며 내공을 다지는 이 시간은, 훗날 내가 정년퇴직 후 중국에 복귀해 맞이할 후생(後生)을 위한 더없이 소중한 자양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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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오늘도 다시 배운다. 잘 정리된 프로그램 코드보다 내 삶의 잘못된 습관을 먼저 고쳐본다. 우리는 흔히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 뒤에 숨어 자신의 고집을 합리화하곤 하지만, 그런 선언이 때로는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타고난 성격이라 할지라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인정하고, 나를 가두던 단단한 틀을 조금씩 벗어 던지려 노력하고 있다. 그래야만 타인에게 다가갈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메시지 전송 버튼 앞에서 어떻게 보내면 상대방의 마음이 상하지 않고 비위에 맞는 말을 적을까 망설이기보다, 그 여백을 채울 따뜻한 진심을 먼저 고민하려 한다. 내 말이 누군가를 다치게 했다면 구차한 이유 없이 사과할 것이며, 잘못된 점은 즉시 시정하는 당당한 태도로 살아가려 한다. 내 생각을 강요하는 명언으로 가르치려는 태도를 버리고, 상대의 안부와 고단함을 먼저 살피는 넉넉함을 실천하고 싶다. 말의 힘을 믿되, 그 힘을 절제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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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가올 시간은 화려한 리더가 아니라, 곁을 지켜주는 편안한 동료이자 아내의 아픔을 함께 짊어지는 든든한 반려자, 그리고 언젠가 딸이 돌아올 자리를 말없이 남겨두는 아버지가 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인생의 황혼 무렵에는 진정으로 무게감 있는 따뜻한 한마디를 남길 줄 아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상대가 온전히 숨 쉴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을 먼저 내어주는 것, 그것이 내가 이제야 배우기 시작한 말의 책임이며, 인생 후반전을 여는 가장 조용하고도 찬란한 시작이라 믿는다.

원본글 : https://wulinamu.com/wlnm/42720/

#말#남자의 갱년기